2009년 12월 28일 월요일

입체주의(Cubisme)와 그 화가들

 

입체주의는 처음부터 집단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난 회화 운동은 아니다. 입체주의라는 명칭 자체도 뒤늦게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거니와 몇 사람에 의한 조형적 혁신의 시도가 이윽고 한 세대의 주도적 미학으로서 근대 회화의 역사 속에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형적 혁명의 선봉에 선 사람이 파블로 피카소와 죠르즈 브라크요, 이들에 호응하여 입체주의 운동에 참가한 사람이 후안 그리, 페르낭 레제, 로베르 들로네 등이다.

 

입체주의 회화가 구체적인 형태로 등장하기는 1907 년의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과 더불어이기는 하나, 입체주의라는 명칭은 1908 년에 제작된 브라크의 일련의 풍경화에서 유래한다. 같은 해의 살롱 도톤느에 출품된 그의 이 풍경화를 본 마티스가 이들 작품을 두고 [조그만 큐브의 축적]같다고 평했고, 그 말을 되받아 야수파란 말을 만들어낸 평론가 복셀이 [블라크는 모든 것을 기하학적 도식, 입방체로 환원시키고 있다.]고 한 평문의 발단으로 1909년부터 입체주의라는 명칭이 태어났다.

 

1907 년은 입체주의 탄생에 있어서의 역사적인 해이다. 입체주의 회화의 두 주역인 파블로 피카소와 죠르즈 브라크가 처음 상면한 것이 이 해 가을이었으며, 또 한편으로 그들의 새로운 조형적 추구에 있어 절대적인 지표가 되는 세잔의 회고전이 열린 것도 바로 같은 해의 살롱 도톤느였다. 그리하여 이 역사적인 만남, 즉 피카소와 브라크와의 만남과 또한 피카소와 브라크 및 세잔과의 만남으로 해서 입체주의는 미술의 역사를 선도하는 하나의 집단적운동으로서 출범하게 되었다.

 

한편 1907 년 피카소가 대작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끝낸 해이기도 하거니와 이 작품 속에 이미 입체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조형적 시도와 그 가능성이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특징은 아프리카 원시 조각의 영향이다. 그리하여 이 영향에 다시 세잔의 교훈을 되살리면서 피카소의 입체주의는 성숙해 간다. 그리고 브라크 또한 세잔 회화의 본질을 연구하면서 조그만 큐브의 축적과 같은 엄격한 조형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입체주의 운동은 보통 다음의 세 단계로 구분된다. 1 기는 전기 입체주의, 2 기는 분석적 입체주의, 3 기는 종합적 입체주의이다. 이 세단계를 연대적으로 확연히 구분짓기는 어려우나 대충 제 1 기는 1907---09 , 2 기는 1910---12 , 3 기는 1913---14 년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분석적 입체주의에서 종합적 입체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실험적인 파피에 콜레의 작품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세 단계를 거치는 입체주의의 전개 과정에 있어서의 두드러진 특성은 그 전개가, 예컨데 야수주의와는 정반대로 명석한 논리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는 사실이며, 또한 바로 그 논리성이 입체주의 회화의 기본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분석적 입체주의의 주역은 역시 피카소와 브라크다. 이 시기 동안 그들은 더없이 밀접한 유대 아래 작품을 제작하였으며, 또 실제로 그들의 작품이 서로가 누구의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동일한 문제를 공유하면서 추구하였다. 그리고 이 분석적 입체주의의 기본적인 특성은 대상의 해체와 그 해체된 대상의 자유로운 재구성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결과로서 대상의 형상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되며, 현실이 오히려 조형적 재구성의 한낱 구실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것은 필경 회화가 현실에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 질서를 지닌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임을 주장하는 것이며, 여기에 또한 추상 회화의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 분석적 입체주의는 종합적 입체주의 시기에 들어서면서부터 한 사람의 새로운 화가 후안 그리를 맞이하게 된다. 그는 말하자면 피카소와 브라크가 그때까지의 입체주의 회화의 대변자였듯이 종합적 입체주의의 대변자이며, 이는 그의 작품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곧 종합적 입체주의 회화의 특성을 말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석적 입체주의와 대비시켜 보았을 경우, 종합적 입체주의의 특성으로는 대체로 다음 몇가지를 들 수 있다. 색채의 부활, 지극히 단순화된 형태이기는 하나 대상의 형태으 재등장, 큼직한 색면에 의한 명쾌한 평면적인 구성이 그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요소들이 그리의 작품을 특성 짓고 있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그것을 다시 한번 입체주의의 분석적 성격과 비교해 볼 때, 양자간의 차이는 더욱 명료하게 드러난다. 분석적 입체주의에 있어 색채는 일종의 금욕주의에 가까운 단색조였고, 대상의 형태는 수정의 잘게 깎인 복잡한 면 속에 해제되고 따라서 화면 역시 입방체형으로 강조된 볼륨의 병치였던 것이다 입체주의에 있어서의 색채의 부활은 입체주의 자체를 크게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시에 그 시야, 이를테면 소재도 넓어지고 다양해진다. 이러한 확산된 의미의 입체주의를 전개해 나간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진 화가가 페르낭 레제, 로베르 들로네이다. 이 두 화가를 입체주의 화가라는 이름으로 묶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이 입체주의적 조형의 영향을 받은 것만은 분명하며, 그 영향으로서는 일차적으로 대상을 자유롭게 분해시키고 다시 그것을 역시 자유롭게 재구성하는 방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러한 입체주의적 시각에 대담하게 색채를 도입했고 나아가서는 입체주의의 본래적인 특성의 하나인 부동성에 대신하여 화면 속에 역동감을 부어 넣으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이 역동감은 레제와 들로네에게 있어 그들의 시야를 근대 생활의 정경과 직결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정물을 위주로 한, 이를테면 실내악과도 같은 입체주의가 문명이라는 것과 합주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연대적으로 보아 입체주의는 하나의 집단적인 운동으로서는 1914 년에 일단 막을 내린다. 이는 제 1 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때를 같이한다. 그리고 종전 후, 입체주의는 이 운동을 주도했거나 이에 호응했던 주요 화가들의 입에서 더 이상 거론되지 않는다. 모두가 각기의 양식을 찾기 위해서 나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어떠한 방향으로 그들의 회화 양식을 추구했든간에 입체주의적 체험이 그들의 밑거름이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겠다.

 

 

피카소 : , 1903, 66.1x 28.5, 클리브랜드, 클리브랜드 미술관

피카소 : 까마귀와 여인 1904, 톨레도 미술관,

피카소 : 유랑 곡예사 가족 1905, 워싱톤 국립 미술관

피카소 : 파이프를 든 아이 1905

피카소 : 두 누드 1906, 151x 93, 뉴욕 근대 미술관

피카소 : 아비뇽의 처녀들 1907, 243.8x233.7, 뉴욕 근대 미술관

피카소 : 호스타 데 에브르, 언덕 위의 집, 1909, 53x60, 상트 페테스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피카소 :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초상화 1910, 모스크바, 푸쉬킨 미술관

피카소 : 등나무 의자가 있는 정물, 1912, 27x34.9, 파리 피카소 미술관

피카소 : 쉬즈 병, 1912, 세이트 루이스 워싱턴 대학, 대학 미술관

피카소 : 눈물 흘리는 여인 1937, 런던 테이트 갤러리

피카소 : 게르니카, 1937, 마드리드 국립 미술관

 

 

피카소 (Pablo Picasso 1881-1973)

스페인 태생 20세기 최고의 화가. 세잔과 고갱, 로트렉을 좋아하고, 앵그르를 좋아함. 입체파의 대가. 초기는 청색시대 (1901-1904) 슬픔이 주조, 그 뒤에는 장미빛 시기 (1904-1907) 그 뒤 "흑인 미술 시대" 브라크와 함께 입체주의 시대 (1908-1912), 앵그르 시대 등 끊임없이 변화하며, 무대미술, 조각, 도기 등 각 분야에 독착성. 유품만 8만 여점.

 

1. 1901년부터 청색 시대. 주제는 주로 거지나 장님, 그리고 절앙적인 모자상 등이 주류를 이룸. 이 작품의 왼쪽 남자는 스페인 친구인카사메가스의 초상이며, 이 그림의 동기는 그의 자살에서 유래됨. 1901년 친구가 자살하자 그 주제로 여러편의 습작을 남김. 이 그림도 19세기 말 상징주의적 경향이 보임. 그의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간,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토대로, 삶과 죽음, 모성, 절망적 사랑을 표현.

 

2. 1904년에 몽마르트 언덕에 이주하여 그린 그림. 젊은 화가들이 모이는 술집 탁자위로 날아다니던 까마귀를 작품화. 여자는 술집주인의 며느리인 마르고가 모델. 그녀는 창백한 얼굴을 까마귀 쪽으로 기울이고 유난히 긴 손으로 어루만짐.

 

3. 예술가의 삶에 대한 주제. 19세기 예술가들의 모습과 20세기를 잇는 초기 작품. 천막을 친 서커스 단원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같은 예술가들의 불행을 작품화.

 

4. 1906년 비오는날, 우연히 길에서 주운 고양이를 갖고 가다, 물을 긷는 페르낭드 올리비에라는 여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동거. 생활에 여유가 생김. 장미빛 시대로 불리워지는 시기의 그림으로, 주제도 가족들의 모습, 서커스 단원, 젊은 소녀와 소녀로 바뀜. 년초에 전시회도 성공. 아폴리네르가 피카소를 예찬함. 막스 자콥과도 교우. 시인들의 친구가 되던 시기의 그림.

 

5. 피카소가 올리비에와 함께 1905년 스페인의 고졸(Gosol) 지역을 여행하며, 원시 조각의 조형미를 발견. 스페인이 로마의 영토가 되기전 고대 이베리아 지역의 조각들을 보고 그 원시적인 형태에 매료. 파리로 돌아와 그린 그림으로, 두 명의 창녀가 커튼 사이로 고객을 내다 보고 있는 있는 장면. 두 인체는 비례나 조형적 특징에서 서양 미술의 전통에서 벗어나 몸체가 육중하고 경직된 팔다리로 이루어짐.

 

6. 입체주의의 시작이 된 작품. 가로 250x 세로 230의 대작. 제목은 피카소의 동료인 앙드레 살몽이 피카소의 스페인 시절의 유명한 매춘굴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 주제는 앵그르의터어키의 목욕과 세잔의다섯명의 목욕녀들에서 영감 받음. 왼쪽에서 들어오는 누드는 커튼을 치켜들어 정면으로 자신들을 드러내는 창녀들을 보여줌으로써 그림의 관람자들을 그녀들의 고객으로 만들고 직접 마주보게끔 강요함. 특히 오른쪽의 두 누드는 강렬한 테라코타 색채와 난폭할 정도의 야만적인 얼굴.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가면에서 영향. 그림을 완성하기전 우연히 인류학 박물관에 들러 아프리카 조각을 보고 영감을 받음. 전통 회화와 비교하여 이 그림에서는 원근과 공간 개념의 변화가 나타나는데, 인체와 인체 사이의 공간은 그 자체로서의 형태를 갖고, 중심공간과 주변 공간이 똑같이 중요한 요소. 시간 개념에서도 오른쪽에 앉아있는 누드의 목과 몸은 서로 다른 시점에서 보여진 모습이 하나의 인체로 종합. 르네상스 이후의 회화개념인 한 순간에 하나의 시점에서 본 자연의 묘사라는 개념을 깨트림.

 

7. 분석적 입체주의 시기 작품. 브라크의 영향으로 풍경화라는 소재를 택함. 구성이 아래에서 위로 치켜올라가는 효과를 가지고 있고, 또 그림의 가장자리가 선적인 특징을 보이고, 면의 투명도와 명암의 조정이 달라짐.

 

8. 화상의 초상화. 사람들은 이해 못함. 대상을 샅샅이 뒤져내 보편성을 추구. 이 그림이 전시 된 화랑에서 어른들은 유리파편의 집합같은 이 그림을 이해 못함. 그 중에 아빠를 따라온 4살 어린 아이가 이 그림을 보고, “이 사람은 볼라르 아저씨네라고 외쳤다는 일화가 있음.

 

9. 종합적 입체주의 시기로 세부적인 분석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꼴라주(Collage), 즉 화면에 물감이외의 신문지, 벽지, 천 등 이물질을 도입. 꼴라주와 파피에 꼴레의 차이는 꼴라주가 기존의 화면과 조화를 이루지 않는 요소를 집어넣음으로써 화면에서 양식적인 분열이 일어나지만, 파피에 꼴레는 종이를 풀로 화면에 붙일 때 기존의 화면 양식과 조화를 이루는 기법임. 이 작품은 등나무 의자 무늬로 착각하게 처리된 유포를 화면에 붙인 피카소 최초의 꼴라주. 탁자는 보는 사람에게 정면으로 보이게 기울어져 있고, 중앙에 술잔, 오른쪽에는 칼의 손잡이와 레몬, 그 밑에는 조개가 있음. “르 주르날이라는 신문 위에는 관람자 쪽으로 튀어나온 파이프가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음. 그리고 화면 아래에는 등나무로 엮은 듯한 무늬가 찍혀진 유포가 붙여져 있음. 로프는 그림의 프레임이 되어주면서 탁자의 가장자리를 의미하는데, 당시 피카소 스튜디오에 같은 술이 달린 탁상보가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로프는 선원이 쓰는 거울의 가장자리에 달기도 했기 때문에 거울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음.

 

10. 1912년 파피에 꼴레에 몰두하여, 종이에 목탄을 사용한 파피에 꼴레 작품. 당시 발칸 전쟁과 건강과 관계되는 신문 기사를 이용. 쉬즈는 아페리티프의 일종.

 

11. 피카소의 연인들, 도라마르, 프랑수와 질로, 자클린 질로등 여러 여인. 도라마르의 초상화. 매력적인 여인의 모습이 아닌 절망하는 여인의 모습. 가학적인 피카소의 태도와 그것을 표현하는 색채의 힘.

 

12. 1937년초 만국 박람회 스페인 관의 벽화 의뢰를 받고 주제를 구상하던 중, 4 26일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게르니카가 프랑코군에 가담한 나찌에 의해 무차별 폭격된 뉴스(사망자 654, 부상자 889)를 접하고, 크게 분개하여 4주만에 완성한 작품. 입체주의이후 신고전주의적 기법과 백..흑색의 단순한 색채로 비극성을 강조한 그림. 반파시즘의 상징으로스페인에 진정한 공화국이 탄생할 때까지란 조건으로 뉴욕 근대 미술관에 대여. 몇차례의 교섭이 있었으니 실패. 1981년 스페인에 반환. 피카소 탄생 백주년을 맞아 프라도 미술관에서 일반 공개.

 

브라크 : 목욕하는 여인 1907-1908, 140x99.1, 파리, 개인 소장

브라크 : 레스타크의 집 1908, 베른, 베른 미술관

브라크 : 테노라가 있는 정물, 1913, 뉴욕 근대 미술관

 

 

 

죠르쥬 브라크 (Georges Braque 1882-1963)

야수파로 시작. 세잔과 피카소를 발견. 입체주의 시작. 대상을 기하 형태로 해체하고, 원근법의 부정, 색채도 화면의 구성요소로 생각하여 재조직하고 재구성하는 기법. 1차 대전 후에도 입체주의를 지킴.

 

13. 1907년 피카소의아비뇽의 처녀들을 보고 충격을 받음. 이전과는 달리 대형 캔버스를 사용하고, 그림처럼 인체의 왜곡과 규모, 색채의 제한, 각이 진 면으로 나뉘어진 배경, 다각도의 시점등 아비뇽의 처녀들과 유사점이 많음.

 

14. 1908년 세잔의 조형적 탐구에 몰두. 첫 그림에서 전경에는 나무, 중경에는 집을 배치. 지붕, , 나무들은 하나하나의 대상으로 구별되고, 자연의 요소가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음. 그러나 하늘은 없어지고 공간은 압축. 색채는 자연적인 색채와 광선에서 벗어나고 형태는 논리적인 원근법에서 벗어남.

15. 95.2x120.3의 대작 파피에 꼴레임. 화면은 맨 아래에 검은 종이, 그위에 나뭇결을 모방한 종이, 그리고 누런 종이 맨 위에 신문 조각 순으로 붙여져 그 자체로서 부조를 이룸. “에코라는 단어는 메아리의 의미로 악기의 음향을 느끼게 함.

 

 

레제 : 숲속의 나신 1910, 120x169.9, 오테를로, 크뢸러-뮐러 박물관

 

레제(Fernand Léger 1881-1955)

노르망디 태생,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야수파, 세잔, 입체주의 등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이룸. 메카니즘에 관심을 갖고 색채는 적색, 청색, 녹색의 스테인드 글라스의 색조이고 형태는 프리즘이나 미래주의 경향이 강함. 그림 초년 시절에는 몽파르나스에서 생계를 잇기 위해 고양이를 잡아먹고, 코로의 모작을 그려주는 생활을 했고, 1940년에는 예일 대학 시간 강사를 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함.

 

16. 초기 작품으로 세잔느의 영향이 두드러짐. 나무둥지는 원통화되었고, 땅과 수풀은 세명의 누드와 유사한 색채와 형태로 변화되어 분간하기 어려움. 세 누드는 나뭇꾼들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체의 조형과 움직임임.

 

들로네 : 에펠탑 1910, 202x138.4,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들로네 : 파리시 1910-1912

들로네 : 블레리오에게 바치는 경의 1914, 바젤, 바젤 미술관

 

 

들로네(Robert Delaunay 1882-1941)

파리 태생, 입체주의로 시작, 순수한 색채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면서 추상적 회화에 이름. 아폴리네르는오르피즘으로 명명됨

 

17. 1912년 죽음을 앞 둔 두아니에 루소는로베르가 에펠탑을 부수어 버리지 말아야 했을텐데라는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함. 들로레는 에펠탑의 찬미자로 루오의 장례식에 참석했고, 300미터의 탑을 분해해 그림. 실물을 따르면 탑의 웅장한 맛이 없고, 원근법을 쓰면 양감이 살아나지 않아 10개의 다른 시점과 다섯 종류의 원근으로 어느쪽은 올려다 보이는 시점, 어느 쪽은 내려보는 시점등을 사용하여 그림.

 

18. 폼페이의 벽화에 나타난 삼미신을 주제로 창밖으로 본 파리시가 복합된 작품. 앞의 그림과는 다르게 색면의 상호 관계가 두드러짐. “나는 슈브렐의 과학적 용어를 채용하였다. 동시 대비“. 나는 음악에서처럼 색채의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라고 함.

 

19. 250x251.5의 대작. 도버 해협의 횡단에 성공한 프랑스의 비행사 루이 브레이오를 위해 그려진 작품으로, 화면에는 에펠탑과 무수한 동심원들로 이루어진 색면 구성이 펼쳐진다. 공간 가운데의 원 운동은 들로네의 조형성의 특징이며, 동심원들이 비행기 프로펠러의 회전 이미지를 유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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